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정말 힘들 때는 분명히 존재하는 선택지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엔 힘들어도 참고 버티는 게
어른인 줄 알았다.
아파도 출근하고,
무서워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는 것.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건 유난이고,
도움을 청하는 건 민폐라고 생각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상황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약해서,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한참 뒤에야
그때 겪었던 것들이
우울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우울은 단순히
슬픈 감정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당연하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지고,
내 감정과 행동을 다루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게을러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몸과 마음이 이미 한계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계속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자고,
또 일어나면 다시 잤다.
그때의 잠은 휴식이라기보다
아무것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에 가까웠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냥 세상에서
잠시 사라지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었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힘들 때는
다른 선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분명 방법은 있었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그 어떤 방법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택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선택지를 볼 힘이 없었던 걸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결국 나는 그토록 괴롭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힘들게 하던 곳을 떠나도
두려움은 한동안 남아 있었다.
몸과 마음은 여전히 지쳐 있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됐다.
힘든 곳에서 벗어나는 것과
다시 괜찮아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알고 싶었고,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했다.
공부하면
답을 알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질문은 더 많아졌다.
사람은 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어려울까.
왜 도움을 청하는 일을
실패처럼 생각하게 될까.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걸
무너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는 없을까.
다음에 비슷한 순간이 온다면
나는 조금 더 일찍 멈출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무조건 버티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멈추는 것도,
도움을 청하는 것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